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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 親 府
서울特別市 有形文化財 第 9號 서울特別市 鍾路區 花洞 1番地 2006年 5月 11日 50回 卒業紀念
시대 : 조선 말기 규모·양식 : 중당 63.45평, 정면 7칸, 측면 5칸, 익사 32.84평, 정면 5 칸, 측면 3칸, 익공계 단층 팔작지붕 재료 : 석조 기단, 목조 원래장소 : 鍾路區 昭格洞 165番地
 종친부는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인 정독도서관 정문에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보인다. 종친부는 조선시대 국왕을 지낸 분의 족보와 얼굴 모습을 그린 영정을 받들고 국왕 친척인 왕가(王家)·종실(宗室)·제군(諸君)의 계급과 벼슬을 주는 인사 문제와 이들간의 다툼 등에 관한 문제를 의논하고 처리하던 관아였다. 종친부는 고려 때 제군부(諸君府)를 세종 15년(1433)에 고친 이름으로 조선말 1905년 종부사(宗簿司)로 이름을 고쳤으나 2년 후에 폐지되어 그 업무는 규장각으로 옮겨졌다.
종친부 건물은 조선시대 관아건축에 해당한다. 원래 경복궁 동쪽 문인 건춘문(建春門) 맞은 편 옛 수도육군병원 후원인, 한성부 북부 관광방(觀光坊)에 그 일부분만이 남아있었는데, 1981년 현위치로 옮겼다. 종친부가 이곳에 위치했던 것은 종신(宗臣)과 외척 및 부마(駙馬)ㆍ인척(姻戚), 그 외에 궁에서 일을 보는 상궁들만 건춘문으로 드나들게 했던 궁궐의 제도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종친부 옆에는 의빈(儀賓)의 인사 문제를 관장하는 의빈부(儀賓府)가 있었다. 의빈이란 왕의 부마, 즉 왕비의 소생인 공주와 후궁의 소생인 옹주의 남편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 의빈들도 왕족 대우를 받았으므로 그들이 모여 의논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곳으로 종친부 옆에 의빈부가 마련되었었다.
종친부 건물은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어보(御譜, 족보)와 어진영(御眞影, 임금의 초상화)을 받들어 모시고 의촉(衣襡)을 만들고, 종실 제군의 봉작(封爵), 승습(承襲), 관혼상제 등의 사무를 행하였던 곳이다.
현존하는 건물은 중당(中堂)과 남쪽의 익사(翼舍), 그리고 이 두 건물을 연결하는 익랑(翼廊)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향하고 있다. 원래 중당의 오른쪽에도 왼쪽 익사와 같은 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없다.
중당과 익사는 건축적인 특색은 없으나 조선후기의 관아 건물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자료이다. |